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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23 문체반정(文體反正) 1

문체반정(文體反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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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블로그나 게시판에 글을 쓰면서 내 글의 문체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사전적으로 문체는 우아체, 유연체, 강건체, 간결체, 유려체 등으로 분류된다. 쉽게 말하자면 글에 투영된 글쓴이의 생각과 느낌을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색깔이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글의 문체를 통해 글쓴이의 개성이 드러나고 당대 상황을 알 수 있다.

18세기 정조는 즉위 초 『문풍(文風)은 세도(世道)와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당시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패관(稗官)소설의 영향으로 조선의 문체가 그 순정성을 잃고 신체문(新體文)이라는 잡문체로 전락하고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정조는 신체문의 유행을 체제이완으로 간주하고 1792년(정조 16년) 문체반정운동으로서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리면서 과거시험을 포함하여 사대부 계층의 글쓰기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검열을 실시했다.

“성균관의 시험 답안지에 조금이라도 패관잡기에 관련되는 답이 있으면 전편이 주옥 같을지라도 하고(下考)로 처리하고, 이어 그 사람의 이름을 확인해 과거를 보지 못하도록 하여 조금도 용서가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문체 타락의 근본적 원인으로 여겨지는 패관소설과 잡서의 수입을 금지하였고, 이러한 실천들은 우리 조선민족의 문화적 자부심을 나타내고 조선사회의 질서 정립을 위한 조치였다.

정조 때의 문체반정이 보편적인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방법이었다면 오늘날의 문체반정은 개화기 이후 우리 문화를 쓸어버리듯 밀고 들어온 외래문화에 대한 경계와 그 악영향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어느새 영어를 필두로 온갖 외래어가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어 일상에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이 서울」,「해피 수원」 등 지자체들은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며 한글-영어 같이쓰기로 표어를 짓고 있다. 세계화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이러한 외국어 남용은 우리말의 순수성을 해치고 있다.

문체란 개인의 투영을 넘어서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게 되는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스스로가 문화제국주의에 목을 내놓고 자신을 버리고 있다. 흰피톨, 붉은피톨 이라는 단어가 백혈구, 적혈구가 되고, 이제는 WBC, RBC가 되고 있다. 가장 근본이 되는 글을 통한 정신적․문화적 독립성이 훼손되고 주체성을 잃어가는 것을 반성하고 더욱 경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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